선생님, 안녕하세요?
제가 드릴 말씀이 있을 때면
선생님 옷깃을 당기고 귓속말을 했었는데,
이번엔 편지로 전하려고 해요.
저 기억하세요?
새 학년 첫날부터 웅덩이마다 첨벙거리고서 학교에 나타났잖아요.
샛노란 비옷에 얼굴은 잔뜩 구긴 채로요.
학교는 제가 못하는 것만 하라는 곳이었으니까요.
얌전히 좀 있어라, 말 좀 잘 들어라.
쫄딱 젖은 채로 뾰로통하게 서서는
이제 혼날 일만 남았구나 하고 있는데
선생님이 웃으면서 그러시는 거예요.
"안녕? 와, 그렇게 서 있으니까
지금 막 오고우에강을 헤치고 온 메리 킹즐리 같은데!"
"그게 누군데요? 오고우에강은 뭐고요?" 제가 그랬더니,
"메리 킹즐리라고, 엄청 용감한 탐험가가 있었거든.
언제 같이 책에서 찾아보자. 악어 얘기도.
그럼, 대걸레 좀 가져와 볼래?" 그러셨어요.
세상에, 악어라니!
출석을 부르고 나서 선생님은 깜짝 선언을 하셨어요.
"반갑다, 얘들아! 올해는 우리 반이 2학년 최초로 텃밭을 가꾸게 될 거야.
진짜 근사한 실험이 되겠지?"
"와, 그럼 땅도 파겠네요?"
저는 막 신이 났어요.
"당연하지. 근데 우선 채소에 대한 책부터 읽고."
선생님의 설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요.
"수학도 해야 하고, 재배 일기도 쓸 거야."
아니, 책이라고요? 수학이요? 일기요?
뜀뛰기, 달리기, 그런 건 자신 있는데.
그다음 주였나, 여러 식물과 물에 대해 알아보려고
학교 뒤편 개울에 갔던 일 기억하세요?
선생님이 안 보실 때 저 혼자 징검돌을 딛다가 개울 한가운데에 풍덩 빠졌잖아요.
그래 놓고선 뻔뻔하게 외쳤고요.
"저 좀 보세요! 꼭 메리, 그 사람 같죠?"
"어이쿠, 악어 나올라!"
그러면서 선생님이 달려와 저를 꺼내 주셨어요.
학교로 돌아가는 동안 제 손을 꼭 쥐어 주셨죠?
제가 덜덜 떨고 있었던 건 비밀로 해 주셨고요.
그동안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.
제가 말도 잘 안 듣고
선생님을 환장하게도 했지만
2학년 그해는 저에게 최고의 한해였다 고요.
제가 지금도 개울에서 첨벙거리고
마당을 파헤치고
고양이한테 책을 읽어 준다는 소식은
선 생니께 별로 놀랍지 않을 거예요.
그보다 꼭 전해 드리고 싶은 건
제가 곧 첫 일터에 나간다는 소식이에요.
내일 아침, 그곳에 들어서면
제 탐험의 길목마다 내밀어 주신 손길을 떠올리며
선생님처럼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.
제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.
제자 올림
말괄량이 제자와 따뜻한 선생님의 추억 속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책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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